야스쿠니 진자 는 단순한 신사가 아니다

 

 

 靖国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

혹자는 한일관계를 과거문제에 연연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교과서적이고 현실문제를 푸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보기좋은 말에 불과하다

야스쿠니 진자 참배는 과거사 문제, 단순한 참배, 전쟁 때 죽은 이를 애도하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과거사, 2차세계대전은 올바른 전쟁이었고 계승 발전시켜야한다는

보수 우익의 정치군사적 판단의 상징성을 나타내고있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일국의 총리가 대 놓고 참배를 계속하는 것은 일본의 향후 정치 군사적인 우익화의 깃발을 꺽을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러한 흐름은  한국과 중국이 뭐라 말한다고 할지라도 미국을 등에 업은 일본은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모든 것이 야스쿠니 참배로 상징화 되고 있는 것이다

 

靖国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参道(さんどう)。奥(おく)が本宮(ほんぐう) 

(야스쿠니 진자 참배로, 안쪽이 본관)

 

야스쿠니 진자:

일본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區]에 있는 일본 최대의 신사.

매년 8월 15일 야스쿠니(靖國) 신사는 일본 보수 우파의 순례 성지로 변한다.

각료와 정치인들이 앞다퉈 참배를 선언했고, '대동아전쟁'을 그리워하는 복고풍 의식도 준비돼 있다.

2차 세계대전 A급전범 14명이 야스쿠니신사에 신으로서 받들어지고 있다

설립연도

1869년

소재지

일본 도쿄 지요다구

설립목적

황군의 혼령을 달래기 위한 국가 신사

 

주요활동

태평양전쟁 전몰자 246만여 명의 위패 안치

규모

9만 9000㎡

야스쿠니진자에는 보통의 신사에는 없는 특별한 시설--유슈칸이 있습니다

 

遊就館に入(はい)ってみると…
2千万人のアジアの人びとの命(いのち)を奪(うば)った侵略(しんりゃく)戦争(せんそう)を
“アジア解放(かいほう)の戦争(せんそう)だった"   と 

(유슈칸에 들어가 보면

2천만명의 생명을 뺏았은 침략전쟁을

“아시아의 해방전쟁이였다고 ”

야스쿠니진자는 일본의 전쟁을 올바랐다고 써져있습니다) 

侵略(しんりゃく)戦争(せんそう)を正当化(せいとうか)する

ドキュメント映画を連日(れんじつ)上映(じょうえい)

(침약전쟁을 정당화하는 다큐멘타리 영화를 연일 상영)


 この映画は、日本の中国への侵略(しんりゃく)から太平洋戦争(たいへいようせんそう)にいたるまでの戦争の全(ぜん)経過(けいか)を「欧米(おうべい)諸国(しょこく)の植民地(しょくみんち)勢力(せいりょく)にたいするアジアを代表(だいひょう)しての」戦争という立場(たちば)からえがいています

(이 영화는 일본의 중국 침략에서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전쟁 전 과정을 “서양과 미국제국의 식민지세력에 대한 아시아를 대표한 전쟁의 입장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遊就館

靖国神社によれば、

1883年(明治(めいじ)15年)開館(かいかん)の、「世界(せかい)最古(さいこ)の軍事(ぐんじ)博物館(はくぶつかん)」 

(야스쿠니 진자에 의하면1883년, 명치 15년 개관한 세계최고의 군사박물관)

 

 

전시되어진 무기들

 

靖国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には、

ふつうの神社(じんじゃ)にはない特別(とくべつ)の施設(しせつ)「遊就館(ゆうしゅうかん)」があります。

(야스쿠니진자에는 보통의 진자에는 없는 특별한 시설--유슈칸이 있습니다)


本殿(ほんでん)、拝殿(はいでん)の20倍(ばい)もの広(ひろ)さで、

玄関(げんかん)ホールには旧(きゅう)日本軍(ぐん)の戦闘機(せんとうき)が飾(かざ)られ、

展示室(てんじしつ)には軍歌(ぐんか)が流(なが)されています。

(본전(신사에서 신령을 모시는 전당),배전(신사에서 배례를 위하여 세운건물)의 20배의 넓이로

현관 홀에는 구 일본군의 전투기가 치장되어있고 전시관에는 군가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日清・日露戦争(せんそう)から太平洋戦争(たいへいようせんそう)まで、

“日本の戦争(せんそう)は正(ただ)しい戦争(せんそう)だった”という立場(たちば)で、

戦争(せんそう)の歴史(れきし)を紹介(しょうかい)している軍事(ぐんじ)博物館(はくぶつかん)です。 

(일청, 일러에서 태평양전쟁까지 일본의 전쟁은 올바랐다는 입장에서 전쟁의 역사를 소개하는 군사박물관입니다)

小泉(こいずみ)首相(しゅしょう)が靖国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に参拝(さんぱい) 

(고이즈미 수상이 야스쿠니 진자에 참배)

超党派(ちょうとうは)の「みんなで靖国神社に参拝(さんぱい)する

国会(こっかい)議員(ぎいん)の会(かい)」

(초당파의 “모두 함께 야스쿠니진자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大東亜(だいとうあ)戦争(せんそう)遺族(いぞく)議員(ぎいん)連盟(れんめい)で

靖国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の参拝(さんぱい) 

(대동아전쟁위족 의원연맹에서 야스쿠니진자 참배)

 

団体(だんたい)で参拝(さんぱい)する一般(いっっぱん)市民(しみん)

(단체로 참배하는 일반시민)

 

毎年(まいとし)恒例(こうれい)の行進(こうしん)風景(ふうけい) 

(매년 행하여지는 행진 풍경-야스쿠니진자)

(야스쿠니와 생각이 다르다고 한다면 고이즈미수상은 참배중지 결단을 해야한다)

 

「日本の戦争(せんそう)は正(ただ)しかった」という靖国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の考(かんが)えと、

首相(しゅしょう)がのべた「侵略(しんりゃく)への反省(はんせい)」は両立(りょうりつ)しないではないか。

(일본의 전쟁은 정당했다고 하는 야스쿠니의 생각과 수상이 말한 “침략에대한 반성”은 양립하지 않는게 아닌가)


また、首相(しゅしょう)がどんな気持(きも)ちで参拝(さんぱい)しても

 

靖国神社(やすくにじんじゃ)の侵略(しんりゃく)戦争(せんそう)正当化(せいとうか)の立場(たちば)に政府(せいふ)のお墨付(すみつ)きをあたえることになるではないか。

 

(또한 수상이 어떤 마음으로 참배를 할지라도 야스쿠니의 침략전쟁의 정당화 입장에 정부는 붓에 먹물을 다시 묻이는 것이 아닌가?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함경북도 북평사직을 맡고 있던 정문부 장군이 임진왜란 중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공을 기려 조선 숙종 때 북평사 최창대가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면 (현재는 함경북도 김책시 임명동)에 세운 전공 기념 비석이다. 높이는 187cm, 너비는 66cm인 이 비석에는 당시 의병들의 활동과 공로가 1500글자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일제의 약탈

러일 전쟁 중이던 1905년, 일본군의 미요시 중장이 북관대첩비를 그대로 둘 경우, 일본군의 북진시 조선인들의 저항을 받을 수 있으니 일본으로 가져가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일본 황실에 타전했고 이를 승인 받아 일본으로 약탈 반출하였다. 그 뒤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가 야스쿠니 신사로 옮겨졌다.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비가 100년 만에

고국에 무사히 돌아왔음을 하늘에 고하는 고유제(告由祭)가

21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용산의 새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