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dy background="back(bs).GIF" bgcolor="white" text="black" link="blue" vlink="purple" alink="red">

< 일본 상식>

new03.gif 대표적인 일본 의 성(城) 24개

 

 
 

                                  

대표적인 일본의 성(城) 24


 

(1)고료카쿠
   (五稜郭)

(2)히로사키죠
   (弘前城)

Image

(3)아이즈와카마츠죠
   (會津若松城)

(4)에도죠
   (江戶城)

(5)우에다죠
   (上田城)

(6)마츠모토죠
   (松本城)

Image

(7)나고야죠
   (名古屋城)

(8)이누야마죠
   (犬山城)

(9)카나자와죠
   (金澤城)

(10)마루오카죠
   (丸岡城)

 (11)이가우에노죠
   (伊賀上野城)

(12)히코네죠
   (彦根城)

ImageImage
ImageImage

 (13)오사카죠
   (大坂城)

(14)히메지죠
   (姬路城)

Image

(15)오카야마죠
   (岡山城)

(16)빗츄마츠야마죠
   (備中松山城)

(17)마츠에죠
   (松江城)

(18)후쿠야마죠
   (福山城)

(19)이요마츠야마죠
   (伊豫松山城)

 

(20)우와지마죠
   (宇和島城)

(21)코치죠
   (高知城)

(22)마루가메죠
   (丸龜城)

(23)쿠마모토죠
   (熊本城)

Image

(24)나카구수쿠죠
   (中城城)

Image

의 역사와 그 매력

글 ●오와다 테츠오(小和田哲男)
시즈오카대학(靜岡大學)교수

성은 인류가 외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구축한 것으로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본에서는 선사시대 사람들이 촌락을 보호하기 위하여 주변에 둥근 못을 만들었던 것도 엄연한 성이었으며, 고대 율령국가(7세기 후반∼10세기)가 동북지방 침공의 거점으로 삼은 타가죠(多賀城)및 중국의 당나라나 한국의 신라로부터의 방어책으로 큐슈(九州)에 지은 미즈키(水城)나 이토죠(怡土城)등도 물론 성이다.
그러나 일본의 성은 중세 무사시대를 맞이하여 더욱 그 역할이 증대되어 규모도 커지고 그 수도 많아졌다. 특히 전국시대(15세기 중엽∼16세기 후반)에는 각각의 지방영주가 영지 지배의 중심으로서, 또한 군사적 거점으로서 쉽게 함락되지 않는 성을 축조하게 되었다. 그 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의 아즈치죠(安土城),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1536∼1598)의 오사카죠(大坂城)와 같은 호화장대한 성이 등장하여 에도시대(1603년∼1867년)로 이어졌다.
오다 노부나가 시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 시대를 쇼쿠호(織豊)시대(1568∼1603)라고 부르지만, 문화사적 분류에서는 아즈치(安土)·모모야마(桃山)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 명칭은 노부나가의 거성(居城)인 아즈치(安土)성과 히데요시의 또 하나의 거성인 후시미모모야마(伏見桃山)성의 호화 찬란함이 이 시대 성곽건축을 대표한 것에서 유래된 것이다.
쇼쿠호 시대와 에도 시대의 성에는 대개 텐슈카쿠(天守閣, 본성 중앙에 세운 망루)가 지어졌다. 이것은 원래 전쟁이 일어 날 경우 전망대와 사령탑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점차로 성주의 위엄을 나타내는, 이른바 상징적 비중이 높아져 외관은 물론 내부장식에도 상당히 치중하게 되었다.
흰 회반죽으로 바른 외관은 본래 방화를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그러나 흰 벽과 기와 지붕, 그리고 검은 판자 담 등의 대비가 자아내는 아름다움도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성벽에 뚫어진 원형과 삼각형 그리고 사각형의 작은 창은 그 곳으로부터 총포를 쏘기 위한 전술적인 것이었지만 그것도 일종의 조형미를 형성하고 있다.

일본인은 왜 성을 좋아하는가

조형미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성뿐만 아니라 사원이나 신사 건축물도 마찬가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은 왜 사원이나 신사보다는 성을 좋아하는가?
첫째로는, 성에서 낭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에는 망루가 갖고 있는 호화 찬란한 측면과 함께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64∼1694)가 “여름 잡초와 무사들이 꿈의 흔적이라”라고 노래한 하이쿠(俳句; 5, 7, 5음절의 단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무사들의 흥망의 무대가 바로 성으로, 성이 함락된 슬픈 전설을 비롯하여, 성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성을 찾아가 보면 그러한 전설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
둘째로는, 성을 찾아봄으로써 선인들의 지혜와 고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성벽에 구멍을 내어 그 곳으로부터 총포를 쏘거나 창을 내 찌를 수 있는 교묘한 장치가 되어 있는 작은 창도 있다. 또한, 적이 일직선으로 동시에 성내에 돌입할 수 없도록 성문을 고안하여 굴곡을 두거나 나무 한 그루도 치밀하게 계산되어 심어져 있다.
성루나 망루에는 돌을 낙하시킬 수 있도록 고안도 되어 있어 중세·근세 무사들과 실제 축성에 종사한 기술자들의 지혜가 선명히 되살아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성이 그 지역 사람들의 상징적 존재로서 계속적인 사랑을 받아 왔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에 있었던 공습으로 꽤 많은 성이 불타버렸으나 그 후 지역주민들의 요망에 의해 복건이 추진되어 망루가 복원된 것이 성에 대한 주민의 사랑을 잘 대변하고 있다. 또한, 망루 등의 건조물이 아니더라도 성 둘레였던 도랑과 돌담만이 남아 있다고 할지라도, 성은 그 지역 사람들의 마음에 안도감을 가져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