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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과 도자기>

 

 

 일본인과 도자기

일본사람들은 자기에 특별한 애착을 느껴왔다. 색, 모양, 감촉이 다른 자기를 만들고

심지어 그릇과 잔, 젓가락받침 등의 식기를 비롯해 독특한 생활문화를 만들어 왔다.

일본사람과 도자기의 관계, 그 역사와 대표적인 산지의 도자기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글 ●가타야나기 쿠사후(片柳草生,수필가)

 

죠몽토기 후카바치
덴니이가타현 출토  기원전 3000 〜 2000년 높이 32.5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고대인들의 거침없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조형


일본의 도자기 ——그 역사와 흐름

일본열도에서 토기가 구워지기 시작한 것은 약 1만 3천년 전이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라고 한다.
대부분은 깊이가 깊은 대형 주발로 취사시에 주로 사용되었지만, 새끼줄을 둘러 무늬를 내기도 해 죠몽 토기라 불리고 있다. 5천년 전 무렵에는 물결치는 것 같은 돌기로 장식한 코우엔, 그릇 전체를 장식하는 손이 많이 간 장식 등, 매우 박력있는 조형이 생겼다.
약 1만년에 걸친 죠몽시대 이후, 벼농사와 함께 새로운 토기가 한반도에서 전해져 저장용과 식기 등,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토기가 생겼고, 이를 야요이토기라 한다.죠몽 토기에 비해 장식은 적고 온화하고 밝으며 볼록한 느낌을 준다.
5세기 초, 다시 한번 한반도에서 획기적인 기술이 전해진다. 구릉의 경사에 따라 터널모양의 가마가 만들어져 보다 높은 온도로 도자기 (스에키)가 구워지게 되었다.들에서 불로 구운 토기보다는 본격적인 도자기 만들기가 시작된 것이다.
7세기 중반에는 한반도와 중국의 기술을 배워 유약을 칠하고 저온에서 구운 도기가 만들어진다. 진한 녹색의 료쿠유도기와 적황녹 3가지 색을 사용한 나라산사이 등이다. 그러나 이들은 궁중이나 귀족, 사원만의 전유물로 11세기경에는 없어지고 만다.
그동안 스에키를 굽는 가마는 전국으로 확산되어 마침내 도자기를 굽는 사람들은 고온의 가마 안에서 도자기 옆에 걸쳐 놓은 연료의 재가 녹아서 자연의 유약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식물의 재를 칠해 인공적인 유약으로 만드는 카이유도기가 오와리(아이치현 북서부)에 생겼다.
이렇게 중세에는 각지의 사나게요 가마를 중심으로 새로운 기술을 더해가면서 수 많은 가마가 생겼다. 그 중에서 오늘날까지 도자기를 굽고 있는 세토, 고토나메, 에치젠, 시가라키, 탄바, 비젠 등 여섯곳의 대표적인 가마가 있는 곳을 「록코요 」라고 한다. 이들 가마에서는 대부분이 소체에 의한 큰 독이나 항아리, 화분 등 소박한 잡기를 생산하였다.
그러나 사나게에서 가까운 세토 만은 유약을 칠한 고급품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당시 귀족과 무사들은 중국 송나라의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도공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황갈색과 낙엽색, 황녹색 등의 모양과 문양이 송풍의 모습을 한 항아리와 술병, 다도용 병, 찻잔 등이 만들어진다. 세토가마는 16세기경 까지 일본에서 유일한 유약을 칠한 도기의 산지로서 수입품을 모방해 가면서 일본인의 기호에 맞는 그릇을 계속해 만들었다.

 

 

 

15세기부터 16세기에는 일본 전국에서 전란을 거듭하는 「전국시대 」였다. 계속되는 전란으로 세토의 도공들은 북쪽으로 산을 넘어 미노로 도피했다. 도공들은 이 지역에서 기제토, 세토쿠로, 시노와 오리베 등, 일본 독자적인 도자기를 낳는 쾌거를 거두게 된다. 한편 당시, 다도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 잡게 된다. 12세기말에 중국에서 전해진 차를 마시는 습관은 16세기에는 단지 차를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손님을 접대하는 법도와 예법과 함께 집주인의 미적 감각을 표현하는 종합적인 예술로까지 높아지게 되었다고 한다.
미노에서 구워진 도기의 황색, 백색, 흑색, 녹색 등의 색채에는 중국과 조선의 도자기의 영향이 엿보이지만, 좌우 비대칭의 조형과 추상분양 등에서는 다른 외국 것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이 있고 다도를 위한 찻잔, 그릇, 향합, 향부 등 이 외에도 화병과 촛대 등 다양한 용도의 그릇도 생겨났다. 다도는 도자기에 일본인의 미의식을 결집시켰다.
일본이 통일된 16세기말 모모야마 시대는 바로 일본 도자기의 일대 전환기이기도 했다.
같은 시기 한반도에서 다시 한번 새로운 기술이 전래된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출병으로 다도에 정열을 기울이던 무장들은 한반도에서 많은 도공을 데리고와 큐슈를 중심으로 한 각지에 가마를 만들게 했다. 카라쓰,아가노,타카토리, 사쓰마,하기 등이 그것이다. 그 중 에서도 카라쓰야키는 유난히 뛰어 나고 다채로우며,찻잔과 화병뿐만 아니라 일상 잡기도 대량으로 구워져 카라쓰에서 일본 국내로 출하되었다.
자기가 탄생한 것은 에도시대 초기인 17세기였다. 일본의 도자기 역사에 기록될 엄청난 혁신의 파도는 조선인 도공에 의한 기술로 시작 된다. 마침내 아리타의 이즈미야마 에서 하쿠지코가 발견되고, 얇고 가벼우면서 튼튼한 흰색 바탕에 그림 이 그려진 자기는 순식간에 전 일본을 석권했다.이마리항에서 출하했다고 해서 이마리야키라 불렸다.처음에는 조선의 자기의 영향이 있었지만, 마침내 방대하게 유입되던 중국자기에 철저히 배우며 크게 발전하게 된다. 사카이다 가키에몬은 아카에기법에 성공해 투명한 흰 자기에 화려한 채색을 했다.
동양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유럽의 왕후귀족은 앞다투어 이마리를 찾았다. 심지어 독일의 마이센,네덜란드의 델프트를 비롯하여 유럽 각지에서 일본의 이마리와 가키에몬을 베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일본의 도자기의 가장 화려한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한편 교토에서는 17세기에 노노무라 닌세이가 나타나 교토나름대로의 독특한 왕조의 취미가 넘쳐나는 디자인과 채색화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계속해서 오가타 겐잔,오쿠다 에이센,아오키 모쿠베이들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쿄야키의 세계를 만들어 내고 오늘의 기요미즈야키의 기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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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베시마야키
이로에오우주몽사라
18세기  높이 5.8 ㎝ 구경 20.3 ㎝ 밑 11.0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최고급 이로에자기

19세기가 되면서 일본의 각지에서 도예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중국 명나라 말기 고스아카에와 숀즈이 등 일본인 기호의 디자인은 완전히 정착해 오늘까지 일본식기 속에 살아있다. 또 19세기 후반에는 파리의 만국박람회 출품을 계기로 이마리와 사쓰마,쿠타니 등의 도자기가 다시 한번 유럽에 큰 영향을 주고 일본식 자기의 유행은 마침내 아르누보 (art nouveau)를 낳게 된다.
일본 도자기의 흐름은 한반도와 중국에 큰 영향을 받으며 발전해 왔지만, 일본인의 미적 감각과 생활상 을 반영하면서 일본만의 독특한 도자기를 만들어 온 역사이기도 했다.

 

 


다양한 일본의 도자기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도자기가 발달한 나라라고 한다. 그 기술과 종류는 세계에 유례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대부분의 식기가 자기이고, 모양과 색채도 매우 다채롭다.
도자기에는 크게 나누어 3종류가 있다. 비젠, 시가라키, 에치젠, 도코나메 등 마치 흙 만지는 듯한 독특한 감촉을 주는 야키시메토기(석기), 오리베와 미노의 다도용 도기, 소박한 마시코, 한반도의 분위기가 남아 있는 카라쓰,하기 등 흙의 따뜻한 멋과 다채로운 유약을 사용한 도기. 백지의 여백을 살린 이마리, 현란한 색채로 장식한 쿠타니 등의 자기. 이처럼 일본의 도자기는 각각의 제조법과 산지 나름대로의 미를 추구해왔다.
왜 이처럼 다양한 도자기가 만들어졌을까? 그 대답중의 하나는 도자기가 다도라는 일본문화와 깊은 관계를 가지며 발전해 온 것에 있다.
16세기 후반 모모야마시대는 간소함과 정적함을 중시하는 와비차 의 전성기로, 잃어버린 유현의 경지의 미를 추구하는 「와비(간소정적함과 심오함)」을 새로운 이념으로 했다. 다기로 그 정신을 나타내려한 뛰어난 다도인들은 창의력과 지도력으로 생기넘치는 다양한 다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굽는 도중에 가마에서 꺼내면서 만들어지는 새까만 색의 세토쿠로, 촉촉한 느낌의 기세토, 대담한 형태에 푸른색 유약과 철분을 함유한 유약으로 자유분방하게 그림을 그린 오리베, 그리고 깊은 맛을 주는 시노 등 모모야마시대의 강한 창조적 미의식으로 인해 도자기에 새로운 바람이 분 것이다.
다도인들은 주전자, 찻잔, 꽃병, 향합 등 마음에 든 것에는 그 도구에서 나는 분위기를 즐기며 나름대로의 애칭을 붙여 불렀다. 도자기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외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나 일본 사람들이 도자기에 애착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왼쪽/토코나메야키
자연 유약(타이코)
셋키 사이타마현 아사카시 출토 12세기,
높이33.1cm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오른쪽/세토야키
하이유코마이누
세토 14 〜15세기 높이 18.0 ㎝
아이치현 도자기자료관 소장


 

 

구로라쿠자왕
쵸지로우사쿠 「스에히로 」
16세기 높이 8.6 ㎝ 구경 9.9 ㎝
윗구경 5.5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세토야키
키세토 시시꼬우로
16세기 높이 10.1 ㎝ 구경 8.1 ㎝
우메자와기념관 소장

 

카라쓰야키
사비에소카몽오오바치
16 〜17세기 높이 12.2 ㎝ 구경 36.5 ㎝
밑 10.3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이마리야키
이로에코토부키지킷쇼몽 하치
17세기말 〜18세기 초  구경 22.1 ㎝
토구리미술관 소장

이마리야키
효탄나마즈도지죠
17세기 후반  아리타 카키에몬 양식 높이 26.4 ㎝
사가현립 큐슈도자기문화관 소장

 

일본의 도자기가 다양한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의 식생활에 있다.

일본 만큼 다채로운 식기를 식탁에 내놓는 나라는 없다.
예전에 일본의 식기들은 칠기제품이 중심이었지만, 도기를 들여온 것은 다름아닌다도인들이었다. 카이세키(차를 마시기 전에 나오는 음식)요리에 쓰는 그릇에 도자기를 사용해보면 싱싱하게 신선한 매력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다도에서는 사철에 따라 다과회에서 그 계절에 걸맞는 그릇에 음식을 낸다. 회를 담는 그릇과 술잔, 구운 요리를 담는 접시 등, 다과회를 여는 집주인은 정성을 다해 그릇을 골라 손님을 대접한다. 다도를 즐기는 사람들은 눈으로 즐기며 먹는 미의식을 음식문화에도 도입한 것이다.
19세기 중반에는 기능성이 높은 자기가 일반식탁에도 오르게 되어 입술을 대고 먹는 된장국용 칠기그릇외에는 도자기가 식탁의 주역을 차지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인들은 그릇을 손에 들고 먹는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각자 자신의 식기를 갖고 있다. 그런 특유한 음식문화의 배경도 일본인들이 도자기를 좋아하게 된 커다란 요소중의 하나이다.

 

교야키
이로에게쓰바이즈챠쓰보 노노무라 닌세이 작품 17세기 높이 30.0 ㎝ 구경 11.4 ㎝
밑 11.5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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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지부도카라쿠사우키몽쓰보
이타야 하잔 작
20세기  높이 28.2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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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야키
시노하시몬챠왕 하시히메
16 〜17세기 높이 11.5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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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야키
오리베스하마가타 히라바치
17세기 높이 17.7 cm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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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에칸오즈카쿠자라
오가타 코린 • 신세이 합작
18세기  높이 2.9 ㎝ 가로 22.1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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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야키
미미쓰키하나이레
16 〜17세기  높이 28.6 ㎝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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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야키
소메쓰케류토몽사게쥬 아오키 모쿠베이 작품
18 〜19세기  총 높이 23.0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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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마야키 이로에킨란데
카쵸몬오오카빙 타테노가마 계통
17세기 높이 17.7 ㎝도쿄국립박물관 소장

 

 

자연이 낳은 미——일본 도자기의 미의식

일본인은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도자기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박한 흙의 멋에도 매료되어 왔다.

그리고 그릇의 풍부한 표정에는 자연그대로의 모습이 살아난 부분이 크다.

글 ●토리카이 신이치(鳥飼新市) 사진 ●코노 토시히코(河野利彦)

 

후지와라씨의 작품. 왼쪽/「히다스키 」의 접시. 히다스키는 그릇에 짚을 감아 구워 그 자리에 자국이 남는 현상이다.
짚을 감는 강도를 조절하면 다양한 농도와 색조를 낼 수 있다.
중앙/구울 때 컵 주둥이 주변에 재가 내려앉아 깨알같은 가마헨이 생긴 잔. 오른쪽/그릇에 앉은 재가 자연스럽게 유약 작용을 한 꽃병

 

일본의 6대 도자기의 하나인 오카야마현의 비젠야키. 고운 흑토로 그릇을 만들어 유약을 칠하지 않고 1000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다.
이 때 가마속에서 흙과 연료인 장작의 재가 생각지도 않은 변화를 일으키고 그릇에 깊은 맛을 준다. 이러한 자연의 힘이 낳은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 「가마 속의 변화 」야말로 비젠야키의 매력이다.
「바로 자연의 힘이지요. 비젠은 “자연이 만든 도자기 ”」라고 후지 와라씨는 말한다. 할아버지 후지와라 케이씨, 아버지인 후지와라 유씨 가 모두 「인간국보 」라는 비젠야키 의 명인 집안의 삼대손이다.
물론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그릇의 이미지는 확실히 갖고 있다.
「이 그릇은 이런 색이 되면 좋겠다. 이렇게 구워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늘 가마에 넣습니다 」 지금까지의 경험과 자료에 기초하여 가마의 어느 장소에 그릇을 둘 것인가. 연료인 장작을 어느 정도 태울 것인가. 불은 어느 쪽으로 돌릴 것인가하는 모든 것을 생각한다.
「한마디로 저와 가마의 싸움이지요 」
일단 가마에 불을 지피면 12일에서 13일은 밤낮으로 불을 지펴주어야 한다. 그동안은 계속해서 가마 곁을 떠나지 않고 특히 마지막 이틀 간은 한숨도 자지 못한다.「타탁하는 나무가 타는 소리와 우웅하는 가마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바람소리 를 듣고 있지요. 가끔 온도를 더 올릴까해서 장작을 넣기도 합니다. 그렇게 불과 대화를 나누며 구워내지요 」
그렇게 해서 구워낸 도자기를 가마에서 꺼내면 좀처럼 생각대로 구워진 것이 없다. 그러나 행여 생각했던 이미지와 다르다 하더라도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거기에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이 그릇은 이렇게 완성되고자 했을까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납득하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역시 도자기는 만들고자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다시금 실감하고는 하지요 」 장인의 의도를 초월하는 그런 자연의 힘에 일본인은 매혹되어 버리는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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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보야야키 접시 긴죠 토시오 작품 20세기 지름 48 ㎝

 

온타야키 햐쿠산슨오자라 사카모토 마사미작품 지름 40 ㎝

 

토코나메야키 슈데이 햐쿠닌잇 슈몬큐스 초대 야마다 죠오잔 작품 20세기 높이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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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키 도쿠리 오카다 유타카작품 20세기 높이 12.5 ㎝

교야키
켄잔 우쓰시이로에 모미지자라 카토 운센의 작품 20세기

미노야키 오리베 나가이타자라 쓰카모토 하루히코의 작품 20세기 37.0 ×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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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쿠타니
이로에바쇼야나기즈린가바치 17세기 지름 45.3 ㎝ 마쓰오카미술관

아이즈혼고야키 후카바치 20세기 높이22.8 ㎝

 

히라시미즈야키 소메쓰케 보탄 키쿠몬니토스즈 신카메 야작품 높이66.5 ㎝ 야마가타 히라이즈 미데라 소장


도자기는첨단기술이다

1980년대 들어 전통 도자기 기술은 「파인 세라믹스 」 라는 첨단 기술로 이어진다.
소재에서 가공까지 치밀하게 계산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도자기는 지금은 현대인의 생필품이 되었다.

글 ●다카하시 코우키(高橋考輝) 사진제공 ●쿄세라, 닛산자동차,
도시바 세라믹, 신세이, TOTO기기, 아이티, 신슈 세라믹, 아로카


자동차용 엔진부품(쿄세라)

이전부터 꿈꿔오던 모든 부품을 세라믹으로 만든 「세라믹스엔진 」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지만 점화플러그나 연료분사구 터보로우터 등의 부품에 내열충격성에 우수한 화인세라믹이 사용되고 있다. 고온으로 연소할 수 있기 때문에 연소효율이 좋고 연료가 절약됨과 동시에 배기가스의 유해성분과 소음을 감소시킬 수 있다.

 


스피커(신세이)

전압을 올리면 진동하는 전압세라믹으로, 초소형이고 얇고 가벼우며 절전형 스피커가 만들어졌다. 진동판이 될만한 곳에 이것을 장착하면 소리가 나기 때문에 유리창과 벽, 책상 등에 이 스피커를 설치할 수도 있다. 연필 끝과 비교해 보면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항균 ·탈취 옷감(신슈 세라믹)

염료속에 광촉매효과를 가진 세라믹소재가 시용된 옷감 『미라이후 』. 항균 · 탈취, 오염방지 효과가 있고 타월이나 양말, 시트 등으로 제품화되고 있다.

 

 

초음파 진단장치 (아로카)

통증이나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고, 체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초음파 진단장치. 초음파를 쏘고 그 반사파를 수신하는 이 장치의 주요 부분에는 가는 전압세라믹을 수백개를 묶어놓은 「탐촉자 」 (사진 위)가 있다. 탐촉자에 모인 반사파의 전기신호는 손가락을 빠는 태아의 모습까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가스터빈부품(닛산자동차)

발전용 소형가스터빈 분야에서는 고온의 연소가스에 노출되는 부품을 세라믹화 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소가스의 온도를 기존의 900 ℃에서 1,350 ℃까지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효율은 기존의 20%정도에서 40%이상 까지 향상된다고 한다. 사진 붉은선 안쪽이 세라믹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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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용품(쿄세라)

세라믹제 주방용 칼은 녹슬지 않고 잘 마모되지 않는다. 또는 자른 음식재료에서 「금속냄새가 나지 않는다 」는 장점이 있어 인기상품이 되었다. 세라믹제 과일용칼과 껍질까기, 갈판 등도 있다.

 


항균 ·탈취 상품(아이티)

광촉매효과를 갖는 세라믹소재와 다공질 세 라믹소재를, 전통 세토야키의 기술로 구워낸 『광촉매 달걀 』. 항균 · 탈취효과가 뛰어나 화 장실과 냉장고 등에 두고 쓰여진다.

 

 

 

도자기로 일본의 매력을 표현한다

임 사엠(IM SAEM)

글 ●다카하시 히데미네(高橋秀實) 사진 ●아카기 코이치(赤城耕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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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캄보디아의 문화가 절묘하게 융화된 임씨 의 작품.도쿄내의 유명백화점에서도 전시 판매되 고 있다.

일본 유수의 도자기 생산지인 아이치현 세토시 근교.일본에서는 도자기를 일명 「세토모노 」라고 부를 정도로, 세토는 도자기의 역사와 전통이 뿌리내린 지역이다.
이곳에 일본에 온지 30년간에 걸쳐 도자기를 만들어 온 캄보디아인이 있다. 최근에 임 사엠(55) 씨는 일본 전국 각지에서 작품전을 개최할 정도로 인기있는 도예가이다.
「저는 작품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들지요. 사전에 모양과 색깔 등을 정해놓지 않고 하나하나 만들어가면서 생각합니다 」라고 윤대를 돌리며 임 사엠씨는 웃음짓는다. 시간을 들여 개성이 풍부한 작품으로 완성하는 것이 임 사엠 씨 나름대로의 방법이다.
캄보디아 푸논펜시에서 태어나 대학에서는 국어를 전공했지만 유년기 때부터 좋아하던 유화를 배우기 위해 졸업 후에는 푸논펜미술대학에 다시 입학. 거기서 도예 를 처음 접했다.
「일본의 도자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캄보디아에서는 식사 때, 큰 접시밖에 사용하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작은 주발을 비롯해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식기가 있 습니다. 심지어 모두 공업제품이 아니라 수제품으로 기품이 있어 단번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
25살 때 연수생으로 도일한 후, 세토시에서 본격적으로 도예공부를 시작했다. 연수는 2년 예정이었지만, 임 사엠씨는 부족함을 느껴 연수기간을 4년간 연장했다.
「연수처였던 공장은 대량생산으로 정해진 것을 보다 빨리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기본은 배울 수 있었지만 좀 더 나다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
그 후,일본에서 알게 된 에이코 부인과 결혼. 부인의 내조도 있어 31살에 자신의 공방 「아푸사라스 도방 」을 시작했다. 그러나 도예도 장사여서 작품을 팔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었다. 임 사엠씨는 완성된 작품을 가지고 전국의 도예점에 영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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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에서 작품 만들기에 열중하는 임씨. 원료인 점토는 세토산을 사용한다고 한다. 지역주민의 노력과 우수한 흙으로 인해 수많은 명품이 만들어진다.

「도기가 너무 무거워서 매우 힘 들었죠. 하지만 그 때 깨달은 점이 있었습니다. 도기는 너무 무거우면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을요.좀 더 가볍고 사용하기 편한 것을 만들어야겠다고 」 임 사엠씨는 원료인 점토를 몇 종류 독자적으로 섞어 가볍게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채색도 추운 계절에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붉은 색을 내도록 했다. 보통 도기는 2번 굽지만, 임 사엠씨는 그 위 에 붉은색을 칠하고 다시 한번 굽는다. 「캄보디아에는 일본과 같은 사계절이 없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저에게는 신선함이었죠. 그리고 온천과 폭포 등을 보고 진한 녹색에도 감동했습니다. 그런 일본의 색을 저 나름대로 표현하고 싶었지요 」 임 사엠씨의 작품은 이렇게해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임 사엠씨는 일본어를 배우는데도 고생했지만 그렇게 힘들게 배운 말보다 작품을 통해 마음을 전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요즘 도방과 인접한 자택에서 부 인과 함께 생활하며, 매일 아침 5 시에 기상해서 저녁 6시까지 일을 한다. 여가가 날 때는 유화를 그리 며 보낸다. 「앞으로도 계속 일본에서 살고 싶습니다. 제 작품도 아직도 스스로 만족할 수준이 아니구요 」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임 사엠 씨의 도기는 일본문화를 세계에 전하는 명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