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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즈니스 상식>

섬나라 일본본토을 처음 무릅 꿇게 만든 페리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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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 일본본토을 처음 무릅 꿇게 만든 페리제독


1800년대의 일본은 세계속에서 보면 그저 별 볼일 없는 나라였고

중국,조선과의 교류를 제외하곤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고립된 후진국에 진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페리제독에 의해 무력에 의해  

막부는 겁을 먹고 마지못해 강압적으로 개항을 하게 된다


평화적으로 개항을 한 것이 아니라

과학문명이 발달된, 정확히는 전쟁무기가 발달된

서양에 무력에 무릅을 꿇게 되는 치욕을 겪게 된다

(참고: 그 당시 일본배의 규모는 200톤급이었으나

미국 군함의 규모는 2400톤급이었다 그러니 일본 막부가 겁을 먹은 것은

당연할지도----)


페리제독은 1854년 2월 에도만[江戶灣]의 가나자와[金澤] 앞바다에 정박하여 조약체결을 요구한다  3월 가나가와[神奈川]에서 미일화친조약(美日和親條約)에 조인하고, 시모다(下田)·하코다테(箱館)의 개항을 막부정부로 하여금 약속하게 된다

말이 조약이지 미국함선의 연료와 물자를 대주고 미국과의 무역거래에 있어서 특혜를 주는 말만의 화친조약 굴욕조약인 것이였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처절한 굴욕의 현장 우라가 만이 바라보이는 구리하마 항구에는

페리기념관이 세워져 있고

관광안내 팜플렛에는“페리가 끌고온 흑선으로 태평하게 잠자던 일본은 근대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써져있다


일본근대화의 길은 제국주의의 길이었고

일본제국주의의 첫 먹이가  조선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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